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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의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국내봉환 여정, 첫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7.07.24  17: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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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잃어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뉴스=정성경 기자] 사단법인 아태평화교류협회(이하, 아태협)은 2004년부터 태평양전쟁당시 일제의 국가총동원령 (1938년~1945년)에 의해 해외로 강제동원 된 조선(한국)인 희생자 유골을 발굴해 국내로 봉환하는 순수 민간단체다. 아태협은 이를 위해 자료수집 및 조사를 진행하여 지난 14년간 수 백 번의 해외출장으로 현장조사와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177위의 유골을 수습하여 국내 봉환하였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한뉴스 일본 후쿠시마현 석탄광산지역 약 3,000여명의 한인이 강제동원 현장, (300여명이 묻힌 장소 유해발굴) 현판에는 “태평양전쟁당시강제동원한국인희생자유골발굴” 이라고 적혀있으며, 일본에서 이러한 현판을 세우고 편하게 발굴 작업을 하기 까지는 10여년의 신뢰와 책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강제동원, 그 관심의 시작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과 미국·영국·중국의 연합군이 벌인 전쟁이라고 정의한다. 1931년부터 1945년 까지 계속되었던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大東亞戰爭)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전쟁의 특징으로 일본군의 점령지에서의 약탈·만행과 미국의 철저한 대일파괴 작전을 꼽으며, 전쟁 중 약 팔백만 명의 한국인이 일제의 강제동원에 의해 군인동원·노무동원·군무원·정신대(挺身隊)·학도병으로 끌려 나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전쟁으로 기록된다.

 

이러한 아시아태평양 전쟁과 상흔을 매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사단법인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종식과 광복 72주년을 맞아 그가 시작한 아태협의 시작과 현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한뉴스 수습된 한이 강제동원 희생자유골의 모습(국내 천안국립망향의 동산에 안치됨) 

어머니의 자장가로 들었던 아버지 이야기

 

안부수 회장은 그의 부친이 일제 강점기 때, 면사무소 서기한테 일본에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속아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지만 힘들게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강제동원의 현장 실태를 전해 들었다.

 

당시 그가 전해들었던 내용에 따르면, 고향을 떠난 그의 부친과 십여 명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일본으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중, 사오십 명의 조선인 인부들도 부산으로 도착했으며, 이동 중에 조선인들 중 조장을 선출하여 이동 구간별로 조선인 관리인(반장)이나 일본 순사에게 상황을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끼 항에서 트럭을 타고 여섯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광산이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부친은 석탄을 옮기는 작업에 배치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친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석탄을 캐면서 대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부들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년간의 계약은 노예계약이었다”라며 “동원된 조선인 인부들은 거의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무조건 지장을 찍고 일본으로 따라나섰던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의 부친은 곧 이 사실을 알고 친한 이들과 탈출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그의 부친과 친구 한 명만 한 일본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강제동원 후유증으로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뜬 것이다. 이제 갓 돌이 된 아들을 두고...

ⓒ대한뉴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수습( 일본 사찰 및 납골시설에 보관된 유골의 모습) 
ⓒ대한뉴스 국내봉환 일본 추도식을 마치고 왼쪽부터 일본본부 미아나가 히토시회장, 진언종 종정 시라토큰스님, 한국총본부 안부수회장, 동경지부  모리따지부장.

안 회장에게 부친의 기억은 모친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전부다. 그는 “어머니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참 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일본에 끌려갔을 때 같이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을 늘 궁금해 하시고 그리워하셨다. 일본을 떠나면서 성공하면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도 하셨다고 한다. 작업 중에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은 고국으로 돌아왔는지도 항상 궁금해 하셨다”며 그가 부친이 일했던 곳을 추정하고 조사하여 후쿠시마 지역인 것으로 확인, 그 곳에서 2차례에 거쳐 67위의 한인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여 국내 봉환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모친의 자장가로 들었던 부친의 이야기는 곧 안 회장의 가슴에 깊숙이 새겨졌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그렇게 수 십 년이 흐른 2004년, 사업을 하고 있던 안 회장은 일본 후쿠시마 민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방문 중,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담화에서 전시 민간으로 동원된 한국인희생자 유골을 수집, 반환을 요청하는 기사를 읽고 부친의 죽음과 소원을 떠올렸다.

그는 “그 기사를 읽는데 강제동원 됐던 아버지의 상처와 고통,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 후손인 내가 그들의 한을 풀어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면서 안회장의 6대조인 회헌 안향, 그리고 안중근, 안창호 등의 훌륭한 선조들의 뜻과 정신을 되새기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곧 자신과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아시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의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해외로 강제 동원돼 억울하게 희생된 유골을 발굴해 국내로 봉환하는 민간단체를 설립하여 희생자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희생자 유해 조사 발굴 작업을 착수하였다.

 

그 결과 일본과 아사아·태평양 지역의 한국인 강제동원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유해를 조사, 발굴, 수습하여 2009년 110위, 2010년 31위, 2012년36위 총 177위의 희생자유골을 국내로 봉환 안치 하는 성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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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경 기자 jsgbib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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